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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장墨匠

한상묵

전수 과정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전통 먹을 복원한 명장

  • 공 방 명

    취묵향

  • 분      야

    묵장墨匠

  • 지      역

    음성

  • 활      동

    전통 먹 복원과 제작

한 묵장의 먹, ‘직지영인본 등 문화재청 사업 고서(古書) 인쇄 재현작업에 사용

전수과정 없이 스스로 기록 찾고 연구, 실험 거쳐 전통 먹 제작 고려 먹 단산오옥등 복원

전통 먹 제작 단절되는 것 안타까워, 사후라도 이어가길 기대

 

인쇄술에는 종이와 글자의 새김도 중요하지만 글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이를 찍어내는 데 반듯이 필요한 먹()이 있어야 한다. 청주에서 고려시대 목관묘 안에 들어 있던 먹 단산오옥(丹山烏玉)’의 발견은 한반도 먹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우리의 전통 먹이 어떻게 만들어져 사용됐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단산오옥과 같은 우리의 전통 먹을 재현하기 위해 온 생을 건 한상묵(65) 묵장(墨匠)이 충북 음성군에 취묵향이라는 작업실을 열었다.

한 묵장이 먹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은 20대 후반 이모부의 권유로 시작됐다. 이때의 제조 공정은 정유공장에서 석유를 태운(카본) 그을음으로 먹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 억지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이름에 이 들어가 그런지 무슨 운명처럼,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전통 먹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전통 먹의 제조 공정은 어렵고 더럽고 힘들어 사람들이 기피 하는 업종 중 하나였다. 전국에서 먹 만드는 일을 지속하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먹을 만드는 과정은 현대식 먹의 원리와 같지만 재료가 달라 완성돼 사용했을 때 기품이 다르다.

경기도 동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전통 먹 제작을 하던 중에 동탄 신도시 개발로 작업장 부지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침 청주대학교 한 지인이 청주로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청주 근방에 땅을 알아보다 서울과 왕래가 편리한 현재의 작업장에 둥지를 틀게 된 게 10년이 넘었다.

그가 동탄에서부터 몰두한 것은 전통 방식의 먹 제작을 재현하는 것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가마를 직접 제작하고 재료를 구해 만들기 시작해 현재 전통 먹 제작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먹 중 최상의 먹은 소나무를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松煙墨)이다. 1톤 정도의 소나무를 태우면 1kg의 그을음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아교와 섞어 단단한 먹을 만드는 것이다. 소뼈를 오랫동안 고아 만드는 아교 역시 한 묵장이 직접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 먹은 주로 문화재청 사업의 고서(古書) 인쇄 재현작업에 소용된다.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등의 재현작업에 한 명장이 만든 먹이 사용된 것이다.

전통 먹을 만드는 과정이나 재료는 단 한 가지도 거저 얻어지는 게 없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 그을음부터 아교를 만드는 일까지. 이런 고난도의 작업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전통 먹과 현대 먹의 차이는 카본 먹이 한밤중 밤하늘 색이라면 송연묵은 해뜨기 직전의 밤하늘이고, 식물성 기름을 태운 유연묵은 황혼 이후의 밤하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고서를 재현하면서 칠흑처럼 검은 카본 먹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송연묵이 부드럽고 싫증나지 않고 보기 편안한 색을 내는 것이다.

한 묵장이 정성을 기울이는 작업도 송연묵이다. 송연묵은 사용할 수 있는 먹이 만들어지기까지 보통 1년의 작업 과정이 걸린다. 한겨울과 한여름에는 소나무를 태워 그을음을 모으고 여기에 아교를 끓여 섞으면 찰흙처럼 굳어진다. 이것을 틀에 넣어 고정 시키면 딱딱해진다. 틀에서 빼내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건조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온도를 맞추고 정성을 다해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1주일은 기본건조과정이고, 2차 건조과정은 1년에서 10년도 걸린다.

한 묵장이 이처럼 평생에 걸쳐 전통 먹 재현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 스승과 스승으로 이어져야 하는 전승 과정이 생략된 때문이다. 이미 전통 먹 생산의 맥이 끊긴 상태에서 현대 먹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전통 먹을 스스로 노력하고 실험해 터득한 그로서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자신마저 그만두고 나면 전통 먹 생산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동안 그는 3명에게 전통 먹 제작공정을 전수했으나 현재 세 사람 모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너무 힘든 과정이라 강요할 수도 없고 현실적인 안정을 보장해줄 수도 없어 강권하지 못하는 처지다.

전통 먹 제작이 단절되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제자들에게 각자 살아가다 내가 죽은 후에라도 명맥을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당부는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된다면 좋죠. 최대한 건강 유지해 오래도록하는 수밖에요.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모두 찍어내는 것을 보는 거에요. 워낙 많은 분량이니만큼 스님들이 필요한 것만 부분적으로 찍어내고 있는데, 목판이 떨어질 우려도 있고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팔만대장경은 송연먹으로 찍었던 것이어서 이것을 다 찍어내려면 우리나라 소나무를 다 베어도 부족할 정도란다.

그가 그을음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가마는 세종류다. 경북 영양군에서 발굴된 전통가마 터를 재현한 것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던 방식, 서양식 피자화덕 가마다.

이렇듯 그는 기록을 찾아 연구하고 무수한 실험과 반복을 통해 누구에게도 전승되지 못해 단절된 전통 먹 제작을 복원해 냈다, 그의 바람대로 기피업종인 전통 먹 제작을 누군가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 묵장은 2014년 전통 먹 기능전승자로 선정됐으며 2020년에 인쇄문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송연먹으로 직지 영인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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