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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 Artist in Chungbuk

충북 공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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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장

유필무

붓 한자루 한자루에 인고의 혼 담아

  • 공 방 명

    석필원

  • 분      야

    필장

  • 지      역

    증평

  • 활      동

    붓 제작

충북도무형문화재 보유자
손길 수천번 거쳐야 완성
난관에도 전통 방법 지켜



일필휘지(一筆揮之), 단숨에 써 내린 글씨를 일컫는데, 이 일필휘지를 이뤄내는 붓은 결코 단숨에 만들어 낼 수 없다. 특히 우리의 전통 붓은 사람의 손길이 수천 번을 거처야 한 개의 붓이 제작될 정도로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1992년 한중수교로 중국의 물자가 유입되자 가장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가 문방사우(文房四友)다. 국내에서 수(手)작업을 했던 지필묵 공방이 대부분 이 무렵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수십 년 붓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들 호구지책을 찾아 뿔뿔이 제 갈 길을 갈 때, 붓 만드는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평생 업으로 삼겠다고 작정한 이가 충북으로 왔다.

충북 문의면 마동리에 들어와 붓 제작을 이어간 충북도무형문화재 보유자 필장 유필무(63)씨다. 열여섯 살에 붓 만드는 공방에서 일을 시작해 현재까지 붓 작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그는 현재 지인의 배려로 작업실을 괴산군 도안면으로 옮겨 사용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공을 들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품질 좋은 붓을 만들어도 판로가 없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중국산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붓 만드는 것을 그만두기에는 자신이 평생 지켜온 소신을 버리는 것과 같아 팔리지 않는 붓이라도, 가난해져도 포기할 수 없는 숙명이 돼버렸다. 인조모를 사용한 대량 생산의 붓이 만연하지만, 그 붓을 전통 붓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8년에 충북도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돼 전승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지원금으로는 재료 수급은 물론 판로가 어려운 붓 제작을 지속적으로 이어 가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만 번도 넘게 그만둘까 고민했죠. 갈등이 일 때마다 처음 공방에서 일하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처음 일을 배울 때 ‘귀한 일을 하며 세상을 살겠구나’하는 긍지가 있었죠. 그래서 좋았는데 어려워졌다고 그만둔다면, 그동안 쏟은 정성이 너무 아깝잖아요."

사춘기 시절 한 개인의 초심이 한 분야의 유산을 지키는 일이 돼 버렸다.

그가 제작하는 붓은 재료와 쓰임에 따라 다양하다. 전통 붓의 재료는 대부분 동물 털을 사용했지만 구전에 의하면 섬유질이 있는 식물 줄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전통 붓에 많이 사용한 것은 족제비나 청솔모, 너구리, 양 등 동물 털이다. 하지만 야생동물 보호법에 따라 유통이 엄격해져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나마 몽골 유목민을 통해 유입되는 양모를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몽골의 사막화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우선 털이 구해지면 털의 길이에 따라 상중하로 나누는 원모고르기 작업이 진행된다. 이어 가죽에 붙은 딱지솜털 털어내기 작업을 하고, 기름 잘 먹는 종이 위에 털을 올려 두고 기름빼기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보통 1년이 소요된다. 기름 뺀 털은 쇠가죽 위에 두고 단단하게 말아 양손으로 비빈다. 털이 윤기나고 질이 좋아지게 하는 과정이다.

다음에 붓털의 끝을 가지런히 맞춰야 한다. 이 작업을 아시 정모라 하는데, 추기고 빗질하고 체질하고 대나무 칼로 칼질하며 삐져나온 털들을 제거한다. 그다음 단계가 털을 고르게 재단하는 과정이며 털이 고루 섞이도록 하는 털타기를 거쳐 털의 뿌리 쪽을 제대로 맞추는 완정모작업에 들어간다. 털을 필요한 만큼 떼어서 저울에 다는 털달기, 물적셔 털고르기, 털을 면끈으로 묶는 초가리 묶기, 밀랍을 녹여 초가리 굳히기를 진행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붓대만들기로 이어진다.

붓대는 주로 대나무를 선호한다. 대나무에 당초문이나 포도문 등 전통 길상문양이나 좋아하는 글귀를 직접 새긴다. 붓대도 종류에 따라 작업과정이 천차만별이다. 죽순을 사용할 경우 해를 넘기지 않은 죽순을 채취해 황토와 물, 쌀겨를 고루 섞어 표면에 바른 후 담장에 올려놓고 눈비를 맞춰가며 말리면 청색으로 변했다 탈색이 되고 이어 맑은 갈색이 된다. 이것을 다시 밤송이를 우린 물이나 양귀비로 염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내구성을 좋게하기 위해 마감으로 옻칠을 하기도 한다.

유 필장은 구전으로만 전해진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 갈필(葛筆)과 같은 붓을 만들기도 한다. 칡뿌리를 찌고 건조해 망치로 두들겨 섬유질을 최소 단위로 쪼개기까지 수 없는 손길로 만들어진 게 갈필이다. 질경이와 띠풀, 억새, 볏짚 등 섬유질이 있는 식물은 같은 방법으로 붓을 만들 수 있다.

붓촉과 붓대를 잇는 방법 역시 밀랍과 화로 등 옛사람들의 방법을 고수한다. 이처럼 한 자루의 붓을 완성하기 까지, 어떤 재료라도, 그 모든 작업과정에서 장인만이 견딜 수 있는 인고(忍苦)의 혼이 담긴 손길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료 수급의 어려움으로 결과물은 적어졌지만 유 필장은 오히려 작업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전통 붓 제작방식이 어느새 몸에 배 자신의 성향과 잘 맞아 필장(筆匠)으로서 현재의 상태가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평이한 작업보다는 필장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을 찾아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무형의 문화유산은 유형의 유산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게 현실이다. 정부나 지차체의 많은 정책이 대부분 유형유산에 집중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싼 공산품이 흔한 세상이지만 자신의 일이 ‘혼을 담은 귀한 작업’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유필무 필장은 2008년 ‘유필무 천개의 붓’(청주한국공예관), 2017년 ‘필가묵무’(경기 가평취옹예술관), 2018년 ‘혼을 담은 붓-필장 유필무의 붓이야기’(증평민속체험박물관0, 2022년 ‘필과 매의 노래’(서울 정종미갤러리) 등의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202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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